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사자 작전 (문단 편집) ==== 공수부대 ==== 나치 독일의 [[공수부대]]는 나치 독일 공군의 소속이었으며 [[에반-에마엘 요새]] 함락같은 전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랑스 침공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바다사자 작전에서도 공수부대의 투입이 결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성과에 가려진 희생이 너무 많아서 바다사자 작전 시기에는 투입 가능한 병력 숫자가 모자라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네덜란드의 사실상의 행정수도인 [[헤이그]]를 공중강습해서 네덜란드 정부를 조기에 무력화하려는 작전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Ju 52]] 수송기 약 250대가 격추되거나 손실되고 포로가 1,300명이나 발생하여 영국으로 끌려갔으며 그 외에도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의 일이 터진 게 큰 문제였다. 그래서 1940년 9월에 바다사자 작전이 발동할 경우에는 나치 독일 공군이 투입할 수 있는 공수부대는 대략 3,000명에 불과하였다. 이 정도로는 공수투하한 곳의 비행장이라도 제대로 점령할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수송기 부족 문제도 심각했다. Ju 52의 생산은 우선도 순위에서 하위권을 달렸기 때문에 손실된 수송기를 보충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1940년 9월 중순의 작전 예정 시기에는 약 220기의 Ju 52와 50기 정도의 DFS 230 글라이더가 사용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이 정도의 수량은 [[크레타 섬 전투]]에 투입된 수송기 수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정도라서 이미 있는 공수부대 투입에도 빠듯한 실정이므로 추가적으로 공수부대를 더 모집했더라도 수송기 부족으로 실제 전장에 투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해서 수송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미 투입된 공수부대에 대한 공중보급이나 상륙군에 대한 긴급공수보급 같은 것을 수행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돌발사태가 생기더라도 긴급보급이 어려워지므로 상륙군이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